이주노동자노동조합

소개 조합연혁



  • 2004년 2월 15일 명동성당 농성 투쟁단 대표 샤말 타파 연행.
    출입국관리소 항의 집회에서 굽타 조합원 연행. 여수보호소의 샤말 타파, 화성 보호소의 깨비, 헉, 굽타, 명동성당에서 까지만, 라디카, 마숨, 마문 조합원 단식투쟁.
    4월 1일 샤말 타파 강제 출국 농성투쟁을 통해 정책 변화의 실질적 성과를 얻지는 못했으나, 한국사회에 이주노동자 문제를 광범위하게 알렸고 노동자, 시민, 학생들의 연대를 조직했음. 고용허가제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 시켰고 농성참가 이주노동자들이 활동가로서 성장하였음. 수도권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이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단결 하기로 결정하여 이주노조 출범의 토대가 되었음.
  • 2005년 3월 12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 건설기금 마련을 위한 연대의 밤’ 개최(이주지부,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창립 총회. 초대 위원장으로 아느와르 후세인, 수석부위원장으로 샤킬 아흐메드, 사무국장으로 까지만 까풍 선출. 창립선언문을 통해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미 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이주노동자 노조 조직화, 한국 노동운동과의 연대 등을 선언.
    5월 3일 이주노조 설립 신고서를 서울지방노동청에 제출.
    5월 9일 노동부에서는 설립신고서 보완 요구.(이주노조 조합원 신원정보 요구) 이에 대해 이주노조는 거부.
    6월 3일 노동부는 “불법취업 외국인은 노동3권 행사의 주체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 반려.
    이주노조는 7월 20일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 행정소송 제기.
  • 2006년 2월 7일 1심 판결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패소판결.
    2007년 2월 고등법원은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된다”고 이주노조 승소 판결. 노동부가 대법원에 상고하여 8년동안 대법원에 계류.
    (2015년 6월 2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노동조합법 취지를 고려하면,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도 노조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므로 자유롭게 노조 결성 및 가입을 할 수 있다”고 판결, 소송 10년 만에 이주노조가 승리)
    5월 14일 새벽 1시 아느와르 위원장이 뚝섬역 출구에서 폭력 단속되어 청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됨.
    5월 29일 서울지부 및 동대문분회 창립.
    6월 12일 경기중부지부 및 안양분회 창립.
    7월 10일 경기남부지부 창립.
    9월 4일 안산분회 창립.
    9월 17일 오산분회 창립.
    9월 25일 의정부분회 창립.
    조합원 300여 명으로 증가. 아느와르 위원장은 보호소에 1년 여 구금되어 있다가 강강 악화, 국가상대 손배소송 재판 등을 이유로 일시 보호해제로 2006년 4월 25일에 석방.
    2007년 8월에 방글라데시로 귀국.
  • 2014년에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을 ‘출국 후’ 수령으로 법을 개악하여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철회를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하여 규탄 투쟁 전개 9월 총회에서 우다야 라이 위원장, 마문 부위원장 선출. 지도집행력을 안정적으로 갖추고 노조 조직화 확대, 여러 투쟁사업 활발하게 진행. 사업장 이동의 자유 쟁취,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쟁취, 단속추방 중단을 위한 활동.
    (2017년에 정부가 사업주 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이주노동자 숙식비를 강제적으로 징수할 수 있는 지침을 시행. 적게는 8%에서 많게는 20%까지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게 하여 이주노동자 임금을 삭감하게 됨. 이에 이주노조와 이주노동단체들이 숙식비 징수지침 반대 투쟁)
  • 2018년에는 이주노동자 투쟁 투어 버스 진행. 5월 한 달 내내 현장 노동자를 찾아가고 고용주와 지역노동청에 대한 항의 시위를 지속해서 진행하여 이에 참가하거나 소식을 접한 이주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했음. 투투버스가 찾아간 사업장의 여러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음. 이러한 성과를 이어 하반기에 ‘전국 이주노동자 대회’가 열려서 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청와대까지 행진.
    2018년에 이주노조는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명칭을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으로 변경. 전국적으로 이주노조 조합원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를 반영.
  • 2019년 이주노조는 천 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있고 일상적으로 조합원들의 사업장 내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활동, 조합원 노동권 교육, 지부 모임 등의 활동 진행. 이주노동자를 강제노동으로 종속시키는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노동허가제를 쟁취하기 위해 사회적 연대활동 진행. 오산지부, 서울지부, 인천지부, 안산지부, 의정부지부, 김포지부, 파주지부, 평택지부, 수원지부, 마석지부가 있음.
  • 2000년 ‘이주·취업의 자유 실현과 이주노동자 노동권 완전 쟁취를위한 투쟁본부’(이노투본) 결성. 고용허가제 반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요구, 이주노동자 직접적 조직화 노력.
  • 2001년 5월 19일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창립 총회. 평등노조 산하의 지부로서 노동조합 출범. 연수제도 철폐, 고용허가제 반대, 합법화 쟁취 요구로 투쟁. 초대 이윤주 지부장 선출.
  • 2002년 4월 7일에 동대문 훈련원공원에서 1천 여 명의 이주노동자 집회 ‘불법체류 일제등록 거부와 합법화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성공적으로 개최.
    4월 28일부터 ‘집회결사의 자유 쟁취, 단속추방 분쇄, 노동비자 쟁취’ 명동성당 농성 시작.
    6월 16일 종묘공원에서 1천여 명 모여서 단속추방 분쇄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 3차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77일 간의 농성 마무리.
    9월 2일 새벽 6시에 평등노조 이주지부 마석분회장 꼬빌, 마석 공동체 대표, 비두 조합원을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이 강제 연행.
    화성 보호소에 구금된 상태에서 보호소 내 투쟁과 단식투쟁 진행.
    단식 21일 만에 일시보호해제로 석방.
  • 2003년 5월 2대 지부장 샤말 타파 선출. 고용허가제 반대, 단속
    추방 중단, 미 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투쟁 전개. 지역 조직 확대와 각 지역 선전전 확대. 10월 12일 ‘단속추방 분쇄 노동비자쟁취 이주노동자 투쟁 결의대회’ 전국 집회에 1천 여 명 넘게 참가. 10월 26일 전국 비 정규노동자대회에서 비두, 자말 조합원 연행 및 이후 강제 출국. 11월 15일 전국적 강제 단속추방 칼 바람에 대응하기 위해 ‘강제추방 저지! 미 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을 명동성장에서 백 여 명 이상 모여서 시작.(이주지부, 네팔 투쟁단, 필리핀공동체, 인도네시아공동체, 민주노총 등이 공동 농성. 2004년 11월 28일까지 380일 간 농성 진행)

  • 2007년 2월 총회에서 까지만 까풍 위원장, 토르너 림부 수석부위원장, 라주 구릉 부위원장, 모니루자만 마숨 사무국장 선출.
    2007년 2월 11일 발생한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10명이 사망하고 이에 대한 대응 투쟁 전개.
    2월 25일 서울역에서 1천 여 명이 참가하여 추모 및 규탄 집회 개최. 이 투쟁 연장선에서 상설적인 연대체로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주공동행동)’ 결성됨.
    11월 27일 까지만 위원장, 라주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이 동시다발로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표적단속됨. 이주노조는 37개 단체와 함께 ‘이주탄압분쇄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12월 5일부터 기독교회관에서 99일 간 항의 농성 전개.(정부는 12월 13일 기습적으로 강제출국 시킴)
  • 2008년 4월 6일 토르너 림부 위원장, 압두스 소부르 부위원장, 비제이 구릉 사무국장 선출.
    5월 2일 저녁에 토르너 위원장, 소부르 부위원장이 동시다발로 표적단속됨. 강제퇴거 취소소송과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조사가 진행중이었음에도 법무부는 5월 15일 강제 출국 시킴.
    11월 12일 법무부의 마석공단에 대한 대규모 토끼몰이식 단속 강행. 모든 진입로를 봉쇄하고 폭력적으로 단속하여 110여 명 연행,
    10여 명의 부상자 발생.(이명박 정권 하에서 강제추방이 강화 되었고, 이에 대해 규탄 투쟁을 전개) 6월 필리핀 조합원을 중심으로 이주노조 여성조합원 모임(UMBRELLA) 구성.
    (2010년까지 유지. 2008년 6월 12~14일에 네팔에서 ‘한국과 본국 이주노동자의 네트워크를 위한 국제회의’ 개최)
    네트워크를 만들고, 한국으로 이주 하려는 노동자들에게 노동권 교육을 하고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에 공동행동을 진행하며 본국으로 귀환한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의 단체를 결성하기로함.
  • 2009년 3월부터 전국학생행진과 함께 ‘이주노동자 한글학교 레인보우 스쿨’을 성수, 동대문, 의정부에서 시작, 2014년경까지 진행
    되었음. 7월 총회에서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 선출. 최초로 고용 허가제 노동자가 위원장으로 선출됨.
    2010년에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가 미 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강화하자 이에 항의하여 7월 13일부터 8월 30일까지 명동 향린교회에서 농성 진행.
    (7월 25일부터 8월 23일까지 30일 간 항의 단식투쟁 전개)
  • 2010년 민주노총과 네팔노총이 이주노동자 권리보호와 조직화 확대를 위해 협약을 체결. 네팔 이주활동가를 민주노총 이주 조직담당자로 선임 하였고, 이에 이주노조 서울지부장 우다야 라이가 선임되어 2016년까지 민주노총 조직담당자로 활동함.
  • 2011년 2월에 서울출입국관리소가 미셸 위원장에 대한 체류허가를 취소하고 출국명령을 내림. 미셸 위원장의 사업장에 일감이 없어서 노조활동을 많이 하였던 것인데, 이를 두고 ‘허위취업’을 했다고 뒤집어씌운 표적탄압 이었음. 이에 대해 항의하는 한편, 행정소송을 제기 하였고 9월 15일에 1심은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음.
  • 2012년 5월에 고등법원은 패소판결을 내렸음.
    G-1 임시비자를 가진 채로 미셸 위원장은 2월에 할머니 병간호를 위해 필리핀으로 귀국 했고 4월 30일에 재판 점검 등을 위해 입국했으나 인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 당했고 다음 날 강제 출국 되었음.
    6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지침 개악. 기존에 이주 노동자에게 제공하던 구인업체 리스트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사업주 에게만 이주노동자 리스트를 제공하겠다고 함. 이는 사업장 이동이 자유가 박탈된 이주노동자들의 제한된 구직 선택마저 없애겠다는 것임. 이에 이주노조,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국의 이주노동단체들이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변경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7월 노동부앞 집회, 8월 각 지역 집회, 9월 23일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1천 여 명이 개최하며 투쟁 전개. 노동부는 이주노동자에게 3일에 한 번 업체 한군데 정보를 문자 발송하는 것으로 찔끔 변경함.
2000년 ‘이주·취업의 자유 실현과 이주노동자 노동권 완전 쟁취를위한 투쟁본부’(이노투본) 결성. 고용허가제 반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요구, 이주노동자 직접적 조직화 노력.

2001년 5월 19일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창립 총회. 평등노조 산하의 지부로서 노동조합 출범. 연수제도 철폐, 고용허가제 반대, 합법화 쟁취 요구로 투쟁. 초대 이윤주 지부장 선출.


2002년 4월 7일에 동대문 훈련원공원에서 1천 여 명의 이주노동자 집회 ‘불법체류 일제등록 거부와 합법화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성공적으로 개최.
4월 28일부터 ‘집회결사의 자유 쟁취, 단속추방 분쇄, 노동비자 쟁취’ 명동성당 농성 시작.
6월 16일 종묘공원에서 1천여 명 모여서 단속추방 분쇄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이주노동자 3차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77일 간의 농성 마무리.
9월 2일 새벽 6시에 평등노조 이주지부 마석분회장 꼬빌, 마석 공동체 대표, 비두 조합원을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이 강제 연행.
화성 보호소에 구금된 상태에서 보호소 내 투쟁과 단식투쟁 진행.
단식 21일 만에 일시보호해제로 석방.

2003년 5월 2대 지부장 샤말 타파 선출. 고용허가제 반대, 단속
추방 중단, 미 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투쟁 전개. 지역 조직 확대와 각 지역 선전전 확대. 10월 12일 ‘단속추방 분쇄 노동비자쟁취 이주노동자 투쟁 결의대회’ 전국 집회에 1천 여 명 넘게 참가. 10월 26일 전국 비 정규노동자대회에서 비두, 자말 조합원 연행 및 이후 강제 출국. 11월 15일 전국적 강제 단속추방 칼 바람에 대응하기 위해 ‘강제추방 저지! 미 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을 명동성장에서 백 여 명 이상 모여서 시작.(이주지부, 네팔 투쟁단, 필리핀공동체, 인도네시아공동체, 민주노총 등이 공동 농성. 2004년 11월 28일까지 380일 간 농성 진행)

2004년 2월 15일 명동성당 농성 투쟁단 대표 샤말 타파 연행.
출입국관리소 항의 집회에서 굽타 조합원 연행. 여수보호소의 샤말 타파, 화성 보호소의 깨비, 헉, 굽타, 명동성당에서 까지만, 라디카, 마숨, 마문 조합원 단식투쟁.
4월 1일 샤말 타파 강제 출국 농성투쟁을 통해 정책 변화의 실질적 성과를 얻지는 못했으나, 한국사회에 이주노동자 문제를 광범위하게 알렸고 노동자, 시민, 학생들의 연대를 조직했음. 고용허가제 문제를 사회적으로 부각 시켰고 농성참가 이주노동자들이 활동가로서 성장하였음. 수도권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이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단결 하기로 결정하여 이주노조 출범의 토대가 되었음.

2005년 3월 12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 건설기금 마련을 위한 연대의 밤’ 개최(이주지부,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4월 24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창립 총회. 초대 위원장으로 아느와르 후세인, 수석부위원장으로 샤킬 아흐메드, 사무국장으로 까지만 까풍 선출. 창립선언문을 통해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 미 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이주노동자 노조 조직화, 한국 노동운동과의 연대 등을 선언.
5월 3일 이주노조 설립 신고서를 서울지방노동청에 제출.
5월 9일 노동부에서는 설립신고서 보완 요구.(이주노조 조합원 신원정보 요구) 이에 대해 이주노조는 거부.
6월 3일 노동부는 “불법취업 외국인은 노동3권 행사의 주체로 볼 수 없다”며 설립신고서 반려.
이주노조는 7월 20일 노동조합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 행정소송 제기.

2006년 2월 7일 1심 판결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패소판결.
2007년 2월 고등법원은 “불법체류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된다”고 이주노조 승소 판결. 노동부가 대법원에 상고하여 8년동안 대법원에 계류.
(2015년 6월 2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노동조합법 취지를 고려하면,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도 노조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므로 자유롭게 노조 결성 및 가입을 할 수 있다”고 판결, 소송 10년 만에 이주노조가 승리)
5월 14일 새벽 1시 아느와르 위원장이 뚝섬역 출구에서 폭력 단속되어 청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됨.
5월 29일 서울지부 및 동대문분회 창립.
6월 12일 경기중부지부 및 안양분회 창립.
7월 10일 경기남부지부 창립.
9월 4일 안산분회 창립.
9월 17일 오산분회 창립.
9월 25일 의정부분회 창립.
조합원 300여 명으로 증가. 아느와르 위원장은 보호소에 1년 여 구금되어 있다가 강강 악화, 국가상대 손배소송 재판 등을 이유로 일시 보호해제로 2006년 4월 25일에 석방.
2007년 8월에 방글라데시로 귀국.

2007년 2월 총회에서 까지만 까풍 위원장, 토르너 림부 수석부위원장, 라주 구릉 부위원장, 모니루자만 마숨 사무국장 선출.
2007년 2월 11일 발생한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10명이 사망하고 이에 대한 대응 투쟁 전개.
2월 25일 서울역에서 1천 여 명이 참가하여 추모 및 규탄 집회 개최. 이 투쟁 연장선에서 상설적인 연대체로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이주공동행동)’ 결성됨.
11월 27일 까지만 위원장, 라주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이 동시다발로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표적단속됨. 이주노조는 37개 단체와 함께 ‘이주탄압분쇄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12월 5일부터 기독교회관에서 99일 간 항의 농성 전개.(정부는 12월 13일 기습적으로 강제출국 시킴)

2008년 4월 6일 토르너 림부 위원장, 압두스 소부르 부위원장, 비제이 구릉 사무국장 선출.
5월 2일 저녁에 토르너 위원장, 소부르 부위원장이 동시다발로 표적단속됨. 강제퇴거 취소소송과 국가인권위 긴급구제 조사가 진행중이었음에도 법무부는 5월 15일 강제 출국 시킴.
11월 12일 법무부의 마석공단에 대한 대규모 토끼몰이식 단속 강행. 모든 진입로를 봉쇄하고 폭력적으로 단속하여 110여 명 연행,
10여 명의 부상자 발생.(이명박 정권 하에서 강제추방이 강화 되었고, 이에 대해 규탄 투쟁을 전개) 6월 필리핀 조합원을 중심으로 이주노조 여성조합원 모임(UMBRELLA) 구성.
(2010년까지 유지. 2008년 6월 12~14일에 네팔에서 ‘한국과 본국 이주노동자의 네트워크를 위한 국제회의’ 개최)
네트워크를 만들고, 한국으로 이주 하려는 노동자들에게 노동권 교육을 하고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에 공동행동을 진행하며 본국으로 귀환한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의 단체를 결성하기로함.

2009년 3월부터 전국학생행진과 함께 ‘이주노동자 한글학교 레인보우 스쿨’을 성수, 동대문, 의정부에서 시작, 2014년경까지 진행
되었음. 7월 총회에서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 선출. 최초로 고용 허가제 노동자가 위원장으로 선출됨.
2010년에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가 미 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강화하자 이에 항의하여 7월 13일부터 8월 30일까지 명동 향린교회에서 농성 진행.
(7월 25일부터 8월 23일까지 30일 간 항의 단식투쟁 전개)


2010년 민주노총과 네팔노총이 이주노동자 권리보호와 조직화 확대를 위해 협약을 체결. 네팔 이주활동가를 민주노총 이주 조직담당자로 선임 하였고, 이에 이주노조 서울지부장 우다야 라이가 선임되어 2016년까지 민주노총 조직담당자로 활동함.

2011년 2월에 서울출입국관리소가 미셸 위원장에 대한 체류허가를 취소하고 출국명령을 내림. 미셸 위원장의 사업장에 일감이 없어서 노조활동을 많이 하였던 것인데, 이를 두고 ‘허위취업’을 했다고 뒤집어씌운 표적탄압 이었음. 이에 대해 항의하는 한편, 행정소송을 제기 하였고 9월 15일에 1심은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음.

2012년 5월에 고등법원은 패소판결을 내렸음.
G-1 임시비자를 가진 채로 미셸 위원장은 2월에 할머니 병간호를 위해 필리핀으로 귀국 했고 4월 30일에 재판 점검 등을 위해 입국했으나 인천공항에서 입국을 거부 당했고 다음 날 강제 출국 되었음.
6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지침 개악. 기존에 이주 노동자에게 제공하던 구인업체 리스트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사업주 에게만 이주노동자 리스트를 제공하겠다고 함. 이는 사업장 이동이 자유가 박탈된 이주노동자들의 제한된 구직 선택마저 없애겠다는 것임. 이에 이주노조,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국의 이주노동단체들이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변경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7월 노동부앞 집회, 8월 각 지역 집회, 9월 23일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1천 여 명이 개최하며 투쟁 전개. 노동부는 이주노동자에게 3일에 한 번 업체 한군데 정보를 문자 발송하는 것으로 찔끔 변경함.

2014년에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을 ‘출국 후’ 수령으로 법을 개악하여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 철회를 위한 공동행동’을 구성하여 규탄 투쟁 전개 9월 총회에서 우다야 라이 위원장, 마문 부위원장 선출. 지도집행력을 안정적으로 갖추고 노조 조직화 확대, 여러 투쟁사업 활발하게 진행. 사업장 이동의 자유 쟁취,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쟁취, 단속추방 중단을 위한 활동.
(2017년에 정부가 사업주 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이주노동자 숙식비를 강제적으로 징수할 수 있는 지침을 시행. 적게는 8%에서 많게는 20%까지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게 하여 이주노동자 임금을 삭감하게 됨. 이에 이주노조와 이주노동단체들이 숙식비 징수지침 반대 투쟁)

2018년에는 이주노동자 투쟁 투어 버스 진행. 5월 한 달 내내 현장 노동자를 찾아가고 고용주와 지역노동청에 대한 항의 시위를 지속해서 진행하여 이에 참가하거나 소식을 접한 이주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했음. 투투버스가 찾아간 사업장의 여러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음. 이러한 성과를 이어 하반기에 ‘전국 이주노동자 대회’가 열려서 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청와대까지 행진.
2018년에 이주노조는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명칭을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으로 변경. 전국적으로 이주노조 조합원이 늘어나고 있는 상태를 반영.

2019년 이주노조는 천 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있고 일상적으로 조합원들의 사업장 내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활동, 조합원 노동권 교육, 지부 모임 등의 활동 진행. 이주노동자를 강제노동으로 종속시키는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노동허가제를 쟁취하기 위해 사회적 연대활동 진행. 오산지부, 서울지부, 인천지부, 안산지부, 의정부지부, 김포지부, 파주지부, 평택지부, 수원지부, 마석지부가 있음.